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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한전문건설신문 15.08.10 최저가만 중시하는 사회, ‘안전엔 공짜가 없다’

Author
익명
Date
2015-12-03
Views
1116

출처: http://www.koscaj.com/news/articleView.html?idxno=82299

 

최저가만 중시하는 사회, ‘안전엔 공짜가 없다’

 

“최저가낙찰제 확산으로 안전관리비도 줄어 안전관리비의 본질은 사고 예방에 있지 사고를 처리하는 사후 비용이 아니다. 안전관리비 삭감과 책임분산은 잘못된 길이다”

 

건설현장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가시설 붕괴 사고를 단순 사고로 보려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 사고는 일어날 수 있지만 최근의 사고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다. 2014년 말 기준 국민소득이 2만8200달러라고 하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이미 4만 달러를 넘어섰다. 국민의 눈높이는 선진국 수준을 넘어서고 있지만 건설의 사고 인식은 1000달러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다.

지구온난화로 이상기후변화가 곳곳에서 발생되고 있다. 국민은 불특정 지역에 발생하는 집중호우를 더 이상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소득 수준 눈높이만큼 설계기준도 변했다. 한국의 대표도시인 서울의 강우량 설계기준도 10년에서 30년 빈도로 변했다. 3배나 증가된 설계기준에도 불구하고 이상기후를 견딜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높아진 안전 의식에 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할 준비는 아직 먼 길이다. 국내 대학의 한 연구소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이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반 국민의 63.5%가 복지혜택 확대를 찬성한다. 하지만 재원 확대를 위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에 반대하는 국민이 51.1%나 된다. 혜택은 즐기겠지만 지불해야 할 비용은 남의 얘기라는 뜻이다. 이런 국민의 심리를 이용하는 정치 포퓰리즘도 극에 달했다.

개인 소득이 5000달러 미만에서 대부분의 도시기반시설이 완공됐다. 사용기간이 30년을 넘어섰다. 노후화보다 심각한 게 설계와 시공기준 차이에 있다. 30년 전에 건설된 대부분 도시기반시설의 설계기준은 1000불 내외 때 제정된 것들이다. 당시 설계기준에는 사용 기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수명 30년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정부는 공동주택의 재건축 가능시기를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했다. 주택가격 상승 시에는 10년을 늘렸다가 부동산거래를 살리기 위해 늘어난 10년을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참 편리한 발상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문제 삼기보다 경제와 재산권을 더 중시한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연초 영국의 한 잡지가 서울의 안전도 경쟁력을 세계 주요 도시 50여개 중 25위로 평가했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시민이 느끼는 기반시설의 안전 만족도는 평균 57.4%다. 그 중에서도 잇달아 땅 꺼짐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하수관로에 대한 만족도는 51.6%에 불과하다. 시민 2명 중 1명은 불안하다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 서울시회가 조사한 결과도 시민의 이런 인식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침수나 화재 등 재난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재시설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70%나 된다. 도시기반시설이나 건축물들이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국면 전환이 필요한 때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의 거래제도는 여전히 최저가낙찰제 확산이라는 무게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건설원가 자체도 품질과 성능을 높인 가격은 아니다. 저가일수록 시공 중 사고빈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그런데 최저가로 인해 건설현장의 안전관리비도 낮아지고 있다. 안전관리비의 본질은 사고 예방에 있지 사고처리 비용은 아니다. 현장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관리비를 삭감하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건 분명 잘못된 길이다. 천재지변이나 인재 사고 시마다 설계기준을 강화시켜 왔고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어 왔다.

강화된 설계기준이지만 사용 기간이 30년이 넘은 시설물에 적용 여부는 오리무중이다. 일본은 지진으로 인해 강화된 설계기준을 사용 중인 시설물에도 반영하는 게 보편적이라 한다. 우리는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지침이 없다. 예산 여력만이 국민의 안전을 좌우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재정 여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전부다.

안심과 안전에는 공짜가 없다. 동시에 무임승차도 거부해야 한다.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만큼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국민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알려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게 정답이다. 서민을 돕기 위해 10만원권 상품권을 배부하는 것과 건설업자 배불리기 위해 SOC 투자를 넓히는 것의 차이조차 무시하는 게 정치권 포퓰리즘의 현 주소다. 미래 문제는 표심 잡기에 열중하는 선출직에게는 먹히지 않는 말이다. 순환보직에 익숙한 공공기관에게는 보직 기간만 피해가면 된다는 인식이 지배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지켜줄 건설 산업의 역할을 인식하고 국민에게 알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최저가낙찰제를 비난하기보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한 비용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돈을 요구하기 전에 안전사고 제로 건설현장을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이 물론 앞서야 한다.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