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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한건설전문신문, 15.11.08 ‘닥치면 된다’가 ‘닥치면 추락’으로 되는 세상
출처: http://koscaj.com/news/articleView.html?idxno=84078
‘닥치면 된다’가 ‘닥치면 추락’으로 되는 세상
“기술변화 속도가 빛의 속도로 빠른 현대에서 생존을 위해 시장 선두그룹으로 진입하려면 좋은 기술을 활용할 인재를 고급화하고 기술을 발굴ㆍ조합하는 기술디자인이 필수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 믿는 습관이 있다. 모든 게 닥치면 되게 돼 있다는 확신이 자신감으로 변해 버리게 만든 것 같다. 상반기 국내 대형업체들의 수지가 어닝 쇼크 수준은 아니지만 기대보다는 실망감을 안겨줬다.
건설공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무모한 주장은 우리가 과거에 달성했던 성공신화에서 비롯됐다. 내세울 만한 기술력이 없었던 시절에도 외국자본과 외국기술자들의 도움으로 국내건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소화시켰다. 이로 인해 건설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든 게 아닌가.
외국기술이 주도권을 가졌던 상황에서 외국기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국산화시키기 위해 국가차원에서 기술자립 정책을 수립했다. 기술자립의 핵심은 설비투자와 함께 핵심인재 양성이었다. 기술자립은 분명한 목표였고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 중 핵심은 인재 양성이었다. 인재 양성의 목적은 기술자립을 통해 국제시장에 내세울 기술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기술자립 수단은 빠른 추종(fast follo wer), 즉 외국기술을 빠르게 전수받아 이를 현장 적용을 통해 우리 기술로 바꾸는 데 두었다. 기술자립을 이룬 목표 뒤에는 해외영토 확장이라는 거대 시장이 숨겨져 있었다. 추종자의 경쟁력은 결국 가격에서 승부가 난다. 한때는 이런 장점의 효과를 즐겼다. 양질의 기술과 기능에 비해 가격이 선진기업에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가격은 선진기업과 거의 차이가 없어져 버렸다. 추종자에서 앞선 기업을 쫒아갈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수주 실적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저조하다. 산유국의 발주 취소나 연기, 엔화와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저하 등 주로 외적 변화를 원인으로 내세운다. 기업이 내세우는 외적 변화는 외적 변화일 뿐 기업이 해결 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기술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 등은 기업이 내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다. 수주 중심의 양적 성장의 바탕에는 수주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인식해 왔던 믿음이 깔려져 있다. 닥치면 된다는 사고다.
이런 사고에 구멍이 생겼다. 해결될 것처럼 인식되어 온 사업의 수익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닥치면 되는 것에서 닥치면 해가 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수주가격은 더 낮아졌다. 생산원가는 지속 상승한다. 기술력이 있다면 수주가격을 더 낮게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가격 경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넘어가야 하는 문턱을 이미 넘어섰다. 기술 경쟁으로의 전환은 추종자에서 선두그룹(first mover)에 끼어들어야 함을 의미한다. 추종자그룹에서는 가격으로 경쟁하는 신흥국 기업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추종자그룹에서 선두그룹으로 나서려는 기업은 많지 않다.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기업 스스로 자생하는 기술력 제고도 한 전략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유럽기업의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다. 기업이 사업을 스스로 자체 내에서 소화시키는 이른바, 일관생산체계를 갖추는 것도 전략의 한 수단이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방시(Vinci)다. 방시라는 이름 아래 1700개가 넘는 다양한 생산기업들이 모여 있다. 미국기업은 차별화된 기술(FEED)과 사업관리(PM) 역량을 내세운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빛의 속도처럼 빠른 현대에서 선두그룹에 끼어들기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카드는 무엇인가? 닥치면 되겠지 하고 기다리는 시기는 더 이상 돌아올 것 같지 않다. 방법을 기다리기보다 선택이 빠를수록 좋은 시기가 온 것 같다. 세상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국내 기업을 기다려 주는 시장도 없다. 선두그룹에 속해야 생존과 성장이 가능하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술력을 갖추기 전에 인재부터 고급화시키는 게 가장 빠른 길로 보인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인재가 활용 가능한 기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반드시 최첨단이나 최고급, 최신의 기술일 필요는 없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하면 된다.
기술을 발굴하고 조합하는 기능이 기술디자인이다. 기술디자인은 빠를수록 좋다. 최근 미국 아이오와대학 교수가 미국 내 1225개 사업 분석을 통해 초기 계획이 원가에는 25%, 공기에는 39%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결과를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사업 초기에 결과를 디자인하라는 주문이다.
기술디자인을 구사하는 시기도 초기 사업 기획단계다. 초기 계획이 공사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진기업이 강한 것도 바로 이 부문이다. 최첨단·최고급·최신 기술에만 매몰되면 돈과 시간 싸움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