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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설경제, 15.04.09 한국건설 돌파구 마련하려면
출처: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504091720554750074
[시론] 한국건설 돌파구 마련하려면
이복남(서울대 건설환경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최근 영화를 본 후 내내 생각나는 게 판사와 변호사 역할이었다. 판단을 우선해야 하는지, 원고나 피고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지 역할의 본질과 눈높이 문제다. 참고로 필자가 본 영화는 판사와 변호사와 전혀 무관하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음악대학 신입생의 도전과 이미 경지에 오른 재즈악단의 지휘자 교수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극화시킨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영화를 본 후 댓글을 통해서다.
신입생 앤드류는 오직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음악대학에 입학했고 그 대학의 전설적 지휘자 플래처 교수의 지도를 받기 위한 기회를 노렸다. 카리스마 넘치는 교수의 학습 방법에 순응하기 위해 스틱을 잡은 손바닥에 나는 물집과 피도 감수했고 오직 최고가 되기 위해 여자 친구도 포기했다. 최고가 되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족은 물론 친구도 포기할 만큼 대단한 열정을 가졌다. 학생의 열정과 실력에는 아랑곳 않고 교수는 최고 악단을 만들기 위해 2명 이상의 경쟁자를 두고 언제든 교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국의 최고 공연장에 세워 최고의 재즈악단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목표였다. 학생의 목표는 오직 최고의 드러머가 되는 것이다.
목표에서 큰 차이가 났다. 건설로 치면 재즈음악은 완성 상품이고 드러머는 요소 기술에 해당한다. 교수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최고의 재즈곡을 만들기 위해 요소 기술인 드러머가 화음을 최적으로 만들어내도록 하는 연주 기술과 리듬이다. 이에 반해 학생은 드럼만 잘하면 최고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스스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교수의 학습 방법은 전형적인 도제방식이다. 이론보다 연습, 그리고 또 연습을 요구한다. 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남이 하는 걸 배우고 체득하라는 독려 일색이다. 학생의 눈에는 당연히 교수가 폭군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교수는 최고의 음악을 완성시키기 위해 최고의 드러머가 필요했을 뿐이다. 수제자보다는 최고로 평가받을 때까지 악기의 연주자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좋고 나쁨의 문제를 떠나 목표의 차이일 뿐이다.
갈등의 시작은 학생과 교수의 목표 차이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학생은 자기를 버리고, 그리고 손바닥에서 피가 날 정도로 연습을 했기에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를 판단했다. 이에 반해 교수는 최고 연주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노력하라고 닦달한다. 이 장면에서 역할을 짚어보자. 학생은 노력하는 연습생이기 때문에 판단할 위치나 역량이 모자란다. 완성도는 교수와 청중에 의해 평가된다. 제3자인 관람객은 학생 혹은 교수 편에서 판단한다. 최고 경지에 오른 교수는 학생의 노력을 자신의 과거 노력과 시간을 비교하는 수직적 잣대를 들이댄다. 이에 반해 학생은 자신의 경쟁자보다 더 낫다는 상대적 평가를 한다. 학생은 수평적 눈높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관객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교수나 학생의 눈으로 평가한다.
최근 대통령이 중동 4개국 방문 성과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에게 제2의 경제기적을 중동시장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중동시장은 청년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 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청년층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한마디로 ‘너나 가세요’다. 양질의 일자리는 기성세대가 챙기고 자기네들은 음지로 내쫓는다고 비난한다. 50대 이후 세대는 젊은 세대들이 편한 것만 찾아 큰일이라고 걱정한다. 기성세대는 가족과 애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청년들의 도전정신 부족과 편한 것만 추구하는 태도를 꼬집는다. 세대 간 눈높이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2015년 다보스 포럼에서 PwC의 데니스 낼리 회장은 “새로운 경쟁 구도에서 성공하려면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통계상 GDP는 증가하고 있지만 성장만큼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세대별 고용에서 30~54세는 76.7%지만 15~29세는 40.7%에 불과하다. 성장과 고용 관계인 동행지수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양질의 일자리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현재와 미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 과거 경험과 지식이 아닌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편안하고 임금이 높은 일자리만을 찾는다면 요즘 일본 젊은이들처럼 “평화롭게 가라앉는 게 낫다”는 자조감에 빠져들 위험성마저 있다.
한국건설은 새로운 일감과 일자리를 만들어가야 돌파구가 마련된다. 서로가 각자의 눈높이로 시장을 판단하는 판사역할보다 상대방의 눈높이로 시장 참여를 격려하는 변호사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다. 세대 간 멘토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