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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설경제 14.09.18 시론-담합 논쟁에서 미리엘 신부 찾기

Author
익명
Date
2014-10-31
Views
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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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담합 논쟁에서 미리엘 신부 찾기

이복남(서울대 건설환경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국내 TV 9시 메인 뉴스에서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담합에 과징금을 청구한 액수가 사상 최대인 6000억원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예측 보도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28개 업체들에 실제로 4355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했다.

공중파를 탄 담합 뉴스는 당연히 국내 건설의 이미지를 훼손시킨다. 일부 시민단체는 담합으로 예정가의 30%가 부당 이득으로 건설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음이 밝혀졌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국내 건설사들의 반응은 상반되게 나타난다. 담합이 부당한 범죄 행위임을 인정하면서도 일방적인 과징금 부과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교통위반은 했지만 범칙금 부과에는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담합을 인정하면서도 부당함을 주장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인가? 담합을 보는 시각 차이 때문이다. 발주 및 계약 대행기관인 조달청은 계약업무 처리규정에 담합 징후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조항을 규정해 놓고 있다. 입·낙찰 과정에서 담합 이상 징후를 판단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담합을 부당거래 행위로 보는 공정위는 원인보다 결과만을 놓고 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반론에는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시민단체는 담합은 국민 혈세로 건설업자의 배만 불리는 것이라 주장한다. 언론은 담합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과징금보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보도한다.

원도급자인 일반건설업체들은 담합은 손실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담합이 관행 혹은 외적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식이다. 외적 요인에 의한 담합이기 때문에 면죄부를 달라는 것처럼 해석된다. 범죄라도 발생 당시 처한 상황에 따라 처벌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각각의 위치에 따라 서로 보는 눈이 너무 다르다. 공통점은 담합이 분명 부정행위라는 점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으로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국내 공공공사, 특히 대형공사에서 잇달아 발표되고 있는 담합 적발과 과징금 부과에 필자는 강한 의문점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건설공사 발주 및 계약제도는 서비스구매자와 공급자, 즉 발주자와 건설업체 사이에 이뤄지는 거래행위다. 담합 징후를 발견하는 기관이나 조사하는 주체가 조달청과 공정위로 거래 당사자는 아니다. 공공공사 거래에서 계약자인 건설업체는 보이는데 발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발주 및 계약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 구매자인 발주자의 고유 권한이자 책임이다. 발주자의 역할과 책임이 담합 논쟁에서 비켜 있는 이유가 정당한지에 대해 강한 의문점이 든다.

소설 <장발장> 에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과 은촛대 주인인 미리엘 신부, 그리고 죄인을 쫓는 자베르 형사가 등장한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친 것은 범죄지만 은촛대 주인인 미리엘 신부는 장발장이 죄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은촛대를 훔쳐 가도록 만들어 놓은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자베르 형사는 범죄는 범죄일 뿐이기 때문에 장발장을 죄인으로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발장>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3인 중 국내 공공공사 담합 논쟁에서 주인인 발주자가 안 보인다. 담합이 범죄는 맞지만 처벌은 억울하다는 것과 유사하다. 담합을 유도한 국가와 발주기관의 역할과 책임이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담합은 범죄기 때문에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만 있다.

필자 역시 담합은 해서는 안 되는 부당거래 행위라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동시에 담합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와 발주기관의 역할과 책임도 동등하게 중시되어야 한다. 나타난 결과만을 처벌할 경우 담합이 또다시 일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담합엔 반드시 이윤과 일감 확보만이 관계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에 영국건설이 최저가격낙찰제도를 폐지한 배경에는 담합 변수도 포함되어 있다. 최저가낙찰제로 인한 피해 중 하나로 입찰자그룹의 반란, 즉 담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를 지목한 것이다. 국가와 발주기관의 역할과 책임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내 시장의 절반을 넘는 민간공사에 담합이 이슈화되지 않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본다. 민간공사의 수익성이 공공공사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은 아닐 것이다. 공공공사 거래제도와 같이 복잡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공사 거래제도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해답은 발주자의 역할과 책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업기획에서부터 준공 및 운영까지 모두가 발주자의 책임 영역이다. 발주자는 자신의 투자비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사업과 투자비에 대한 오너십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게 공공발주자와 다른 점이다. 전문성이나 투명성 부족 등을 이유로 발주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담합 처벌은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징벌 이전에 제도적 유인 요인, 발주자의 역할과 책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담합 처벌에서 미리엘 신부 역할을 기대해 본다.